비례정당 설립해 ‘노무현’ 내동댕이치려는 민주당

- 비례정당 설립은 신념과 원칙 중시한 노무현 정신에 위배된다.

 

 

원칙을 지키면서 패배하면 다시 일어설 수 있다. 그러나 원칙을 잃고 패배하면 다시 일어서기 어렵다. 나는 이기든 지든, 매순간 원칙을 지키면서 선거에 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성숙한 민주주의,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이루려면 사람만이 아니라 제도도 바꾸어야 한다. 독일식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제일 좋겠지만.. 도농복합선거구제도 차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노무현 자서전, ‘운명이다’-

 

노무현 정신을 추구한다는 정당이 노무현의 신념과 가치를 배반한다. 원칙 있는 승리가 가장 좋고, 원칙을 잃고 패배하는 것이 가장 나쁘다던 노무현을 배반해 원칙 없는 승리를 추구한다. 노무현은 새 시대의 큰 형이 되고 싶었지만, 마지막에는 옛 시대의 막내이길 바랐다. 노무현을 부르짖는 사람들은 그 꿈을 앗아갔다. 민주당은 노무현 시대보다 더 퇴행한 모습이다. 옛 시대의 막내로 노무현을 딛고 서서, 새 시대를 열지 못했다.

 

노무현 정신은 눈앞의 이익보다 신념과 원칙, 극단보다 대화와 이성을 통한 타협을 추구하는 데 있다. 노태우, 김영삼, 김종필이 주도한 3당 합당에 끝까지 반대한 것도, 지역주의 타파를 외치며 종로를 두고 부산에 출마한 것도 신념과 원칙에 의해서였다. 지역주의에의 도전은 사회 분열이 치유되길 바랐던 것이었다. 평검사와 대화한 것, 검찰의 자유를 보장한 것은 원칙 속에서 대화와 타협을 중시했던 이유였다.

 

선거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고도 미래한국당(위성정당) 설립에 같은 대응을 하려 숫자놀음하는 민주당은 노무현 정신을 저버리고 있다. 얄팍한 손익계산으로 제1당 자리를 지키겠다며 선거법을 누더기로 만들려는 모습이 그렇다. 노무현이었다면 이의 있소라며 반대토론에 나섰을 거다. 원칙을 지키고자 했을 거다. 숫자놀음에 바쁜 민주당은 이와는 거리가 멀다. 빠른 손익 계산으로 3당 합당 후 대통령이 된 김영삼을 닮았다.

 

민주당은 10일 의원총회에서 사실상 비례정당 설립에 찬성했다. 비례정당 설립 쪽으로 무게가 쏠렸다. 이들은 4가지 시나리오로 돌린 시뮬레이션 자료를 본 뒤 당 최고위에서 비례정당 설립을 결정키로 했다. 숫자계산을 시작했다는 것 자체가 개정 선거법보다 눈앞의 이익에 집착했다는 걸 보여준다. 최고위는 11일 전당원 투표로 비례정당 설립을 결정하겠다고 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층의 78%가 이에 찬성한다.

 

민주당의 논리를 모르는 바 아니다. 미래통합당이 위성정당으로 과반의석을 차지하면 문재인 정부의 앞길에 암초가 드리우게 된다. 그러나 그 가능성은 낮다. 비례연합당을 구성하더라도 민주당이 7석 이상을 가져가지 않을 거라면 비례대표를 내지 않고, 대신 정의당 등 야권에 일부 지역구 양보를 요구하는 게 낫다. 지역구는 민주당, 비례대표는 정의당 등 야당. 개정 선거법을 지키며 실익도 얻는 방법이다.

 

물론 노무현이라면 이 방식마저 거부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는 당장 손해가 올 지라도 자신의 신념과 가치를 실현하려 한 바보였다. 그리고 이 같은 행동이 정치적 기반이 없던 그를 민주당 대선후보로,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노무현 정신은 신념과 원칙이며, 그것을 시민들이 언젠가는 알아준다는 믿음에 있다. 실제 노무현이 그러했던 것처럼 이는 미래에 더 큰 이익을 가져다 줄 가능성이 적지 않다. 민주당은 이 점을 잊고 있다.

 

돌아보면 민주당은 비례연합당 창당 논의에서는 물론, 선거법 개정 논의 당시부터 노무현의 지향점을 배반했다. 손익계산으로 주판알을 튕기며 연동형 비례대표제 범위를 줄이느라 분주했다. 소선거구제인 우리 선거법이 민의를 대변할 수 없다는 건 불 보듯 뻔한 데도 말이다. 20대 총선 사표 비율은 50.3%였고 그 이전 총선에서도 대개 40%를 상회했다. 사표를 막는 길은 비례대표제 확대에 있다는 걸 민주당이 몰랐을 리 없다

 

열성적 민주당 지지자도 노무현 정신을 잊은 지 오래다. 이들은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지 못 한다. 그것은 한경오 논란(한겨레, 경향, 오마이)과 조국 사태 등을 통해 명확히 드러났다. 비판적 지지자들마저 적으로 간주해 조리돌림하고, 조국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촛불을 들고 나선다. 대화나 타협, 상대에 대한 존중이 사라진 자리에는 내 편만을 생각하는 극단성이 자리 잡았다. 우리는 항상 옳고, 타인은 늘 잘못됐다는 생각마저 엿보인다.

 

민주당과 그 지지자들은 노무현 정신을 말하며 그 정신을 망가뜨리고 있다. 노무현을 계승한다면, 또 노무현을 부르짖는 지지자들이 정말 그의 꿈을 이루어 주고 싶다면 노무현 정신을 돌아봐야 한다. 손익계산에 급급하지 않고, 신념과 원칙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눈앞의 이익보다 사회 전체의 이익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때 장기적 이익도 따르는 법이다. 그것이 노무현 정신이다. 민주당은 눈앞의 이익을 좇아 노무현 정신을 내팽개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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